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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 외동딸은 상당히 변덕스러운 소녀였다. 이게 좋다 저게 좋다며 원하는 것이 많다가도 곧장 가진 걸 싫증냈고, 어제까진 그리도 멀리하던 상대를 다음 날엔 곁에 끼고 놓아주지 않는 일도 허다했다. 조직원들은 그걸 보곤 오냐오냐 자란 아가씨의 무해하고 귀여운 까다로움 정도로 여겼지만, 최측근인 살가드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눈에 보이는 소롤은, 제 보스를 닮아 누구보다 냉정하고 잔인한 여자였다.

요컨대 말하자면, 그녀는 감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변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메말랐기에 손 패를 잘 고를 수 있는 것뿐이었다. 살가드는 소롤이 고르는 모든 것이, 그녀에게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필요할 때 마다 제 어머니의 부하들을 적재적소에 이용했고, 필요가 없어지면 곧바로 손에서 놓았다. 물론 상대들은 그녀의 영악함을 잘 모르니 모든 걸 아가씨의 변덕으로 착각하고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그게 비극이라는 것을 아는 건 자신뿐이다. 아아, 자신도 모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가드는 가끔 제가 소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지곤 했다.

 

‘살가드, 나 좀 업어줄래요?’

 

보스에 의해 아가씨의 번견(番犬)으로 간택 받은 그는 오랜 기간 그녀를 돌봐오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셋 있었다.

첫 번째. 소롤은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소녀지만 사람의 마음을 꾀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남이 뭘 원하는지 알고,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지 금방 눈치 채는 그녀는 남에게 쉽게 환심을 사 자신의 장기 말로 만드는 것이 특기였다.

두 번째. 그녀는 제 어머니를 좋아하는 만큼 어머니의 자리를 원하고 있었다. 딱히 반란을 일으키거나 어머니에게서 자리를 빼앗아 올 생각은 없었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그녀의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란 야망은 확실하게 존재했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마냥 철없는 아가씨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그녀는 제가 정말로 아끼는 것은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 심술쟁이란 것이었다. 장인이 맞춤제작 해 준 원피스, 파란 보석이 박힌 귀걸이, 커스터드푸딩을 맛깔나게 만드는 디저트 카페 등 그녀는 제 마음에 쏙 든 것은 절대 시야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고, 아끼는 만큼 사랑해 주었다.

 

‘살가드는 내 개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아끼는 것에는, 불행하게도 살가드 자신도 들어있었다. 제 말은 무조건 듣는 충성스럽고 무뚝뚝한 부하. 어린 소녀가 마음을 쏟기에 얼마나 좋은 존재인가. 애정보다는 애착에 가까운 그녀의 감정은 언제나 자신의 신경을 긁어놓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도 그녀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했다. ‘그럴 리가’ 제 감정을 깔끔하게 부정한 그는 제가 아가씨에게서 느끼는 애틋함은 모두 함께한 시간이 만든 미운 정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저렇게 교활한 꼬마를 좋아해 봐야 무슨 득이 있나. 게다가 그녀는 언젠가 제 보스가 될 것이다. 좋아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하던 그는 이게 옳다고 생각했지만, 때때로 마음이 어지러워져 곤란했다.

 

 

 

오후 4시 경. 아가씨의 수업이 마칠 시간에 맞춰 학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살가드는 오늘도 늦는 아가씨를 원망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아가씨 또래의 여학생들이 하교하고 있지만, 소롤은 어디에도 없었다.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이라도 해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속을 썩이다니.

 

“이런, 살가드 님. 아가씨가 나왔다고요. 데리러 가야죠?”

 

한눈을 팔고 있는 자신을 부른 건 운전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하니였다. 언젠가부터 소롤의 운전수 역할을 자처하는 그는 조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성격 좋은 인기인 이었고, 살가드에겐 손아래인 부하였다. ‘드디어 나왔나’ 유하니의 말에 교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 살가드는 친구들과 함께 나오고 있는 소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교우관계란 중요하지. 비록 어두운 세계의 우두머리가 될 몸이라 해도 밝은 세계를 겪지 못하는 건 불공평 했으니까. 다만 살가드는 제 아가씨가 옳은 방법으로 저 친구들을 사귄 건지가 걱정되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교활하고 영리하고 잔인한 제 아가씨. 소롤이라면 충분히 제 모든 걸 써서 마음에 드는 친구를 제 곁에 두었겠지. 마치, 인형을 수집하듯이 말이다.

소롤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이쪽으로 오기까지 기다리던 살가드는 피곤한 눈을 비비려 했지만, 갑자기 입을 연 유하니 때문에 손을 올리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꼭 인형을 끌고 나오는 것 같네요, 후후”

“…뭐?”

“이런, 비유가 지나쳤나요? 문득 그렇게 보여서 그만”

 

지나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정확해서 놀란 것뿐이었다.

자신 외엔 그 누구도 그녀의 본질을 보지 못했는데. 지금 이건 우연인 걸까. 평소 겪는 딜레마와는 비교도 안 되는 혼란스러움에 살가드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우연이겠지’ ‘나 외에 누가’ 오직 소롤의 전부를 아는 건 자신뿐이라 믿었는데. 설마 저 녀석이 자신과 같을 리가.

 

“미안 살가드. 늦었지? 얼른 가자”

“다녀오셨나요, 아가씨”

“아, 유하니도 왔네! 신난다! 우리 파르페 먹고 들어가자!”

 

아아. 제가 얼마나 심란한지 분명 표정만으로도 눈치 챘을 텐데 제 아가씨는 또 저리 신이 났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두통을 잠재운 살가드는 사이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을 애써 무시하며 조수석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왜 이 녀석은 자발적으로 아가씨에게 다가온 거지?’

 

답은 곧바로 나오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뒷좌석에 아가씨가 앉은 것을 확인한 살가드는 빨리 출발하기나 하라는 듯 손짓하고 의자에 등을 딱 붙였다.

오늘도 빌어먹을 아가씨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괴롭힌다. 그 괴롭힘에 끓어오르는 감정을 인정해 버리면 고통이 덜어질 것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은 살가드는, 옆에서 떠드는 유하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라디오의 볼륨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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