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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직 괜찮다니까? 응? 식사 좋아, 잠자리 좋아, 거기다 잘 생긴 얼굴이 여섯! 최고지 언니야? 그치?”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책에 고개를 묻었다. 아키쨩, 그냥 우리 조직 와라. 응? 그녀가 자신의 조직에서 마츠노 조직으로 납치되어 온 게 벌써 한 달째. 마츠노 조직의 보스 마츠노 오소마츠는 끈질기게 그녀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칸자키 아키라 너, 우리 조직으로 와라! 정말이지 모 만화의 주인공이 떠오르는 대사다.

 

“그냥 돌려보내 주시는 건 어떠세요?”

“으음, 그건 싫어.”

“이거 명백히 납치인 거 아시죠?”

“뭐 어때. 원래 마피아라는 족속이 착한 일을 하는 쪽은 아니잖아?”

 

마츠노 오소마츠는 입을 삐죽 내밀며 안락의자에 몸을 묻었다. 어떻게 하면 아키쨩이 우리 조직으로 와줄까. 그가 그녀를 멋대로 데리고 온 건 약 한 달 전의 일이다. 마츠노 조직의 보스, 마츠노 오소마츠의 암살 명령을 받고 온 암살자는 잡고 보니 여자였고 심지어 생김새가 오소마츠의 이상적인 여자상에 딱 들어맞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차피 칸자키 아키라라는 여자는 붙잡힌 상태. 그렇다면 살살 꼬드겨서 정부 정도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그건 너무 위험해, 오소마츠 형!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쓰레기 형은.

오소마츠,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네 목숨을 노렸던 여자야.

취향 특이하기는.

오소마츠 형님은 여자가 마음에 드는 겁니까아?

 

물론 그의 형제들이자 마츠노 조직의 다른 간부들은 반대했다. 당연히 오소마츠가 그런 작은 여자에게 당할 거란 생각은 안 하지만 그래도 안전이라는 건 많이 확보할수록 좋은 것이다. 특히 오소마츠 같은 경우에는. 오소마츠는 타협이라는 걸 모르는 보스였고 그랬기에 대부분 적 조직은 전부 몰살한 잔혹한 우두머리였다. 그런 그는 뒷세계의 정점에 군림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형제들을 제외한 모든 이가 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었는걸.

 

마츠노의 여섯 형제는 여자 취향이 제각기 달랐다. 하지만 엄청나게 마니악한 취향은 아니어서 어딜 가든, 예를 들면 어떤 업소에 가던 간에 취향의 여자가 한 명쯤은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술, 여자 좋아하는 오소마츠는 업소에 가서도 단 한 번 여자를 곁에 끼고 논 적이 없다. 어느 날엔가 조직의 언더보스인 카라마츠와 함께 술잔을 기울일 때 그것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건만 오소마츠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입을 닫았다.

 

으응, 그냥 내 취향은 딱히 없네. 안타까워라.

 

하지만 카라마츠가 보기에 오소마츠 역시 썩 마니악한 취향은 아니었다. 늘 심심풀이로 보는 성인 영상물의 일관된 여성취향만 봐도 그의 취향은 단순했다. 아니, 오히려 단순하고 수수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건가? 생각해보면 업소의 여자들은 사내들 눈에 잘 띄어 돈이라도 한 푼 더 받으려 복닥거렸기 때문에 온통 진한 화장과 코가 아린 향수를 뿌리는 게 보통이었다. 오소마츠의 취향은 그런 쪽에 없는 건가.

 

“안녕하세요, 카라마츠 씨.”

 

아침에 일어나 복도를 걸으니 오소마츠가 냅다 마음에 든다며 주구장창 옆에 끼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분명 오소마츠를 암살하러 들어온 적대 조직의 여자였음에도 오소마츠는 그녀를 마음에 들어 했다. 오소마츠의 취향에 가까운 여자인가. 카라마츠가 가만히 아키라를 살폈다. 확실히 은밀하게 움직이는 암살자이다 보니 수수한 모습에 향수는 쓰지 않는다. 그리고 자그마한 계란형 얼굴 안에는 의외로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오밀조밀. 생각보다 미인형인데, 저 여자. 카라마츠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 형님의 안목이 꽤 좋다는 것을.

 

“아아. 너인가.”

“오소마츠 씨는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는데요. 깨워드려요?”

“됐다. 레이디에게 그런 일을 손수 하라고 시킬 순 없지.”

 

카라마츠는 생긋 웃으며 오소마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소마츠는 혹시나 자신이 잠든 사이 아키라가 도망이라도 갈까 싶어 반 강제로 자신의 침대 옆에서 재웠다.

 

“어이, 형님. 일어나라고.”

“으응, 아키쨩. 오소마츠 씨는 아직 너무 피곤해.”

“레이디는 여기 없어. 바보 형님.”

“윽. 뭐야. 카라마츠잖아.”

 

오소마츠는 품에 끌어안고 있던 깃털베개를 옆에 고이 놔두고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무언가를 끌어안고 자는 건 오소마츠의 버릇이었다. 정확히는 그가 조직의 보스로 군림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 마츠노 조직은 원래 특별하게 보스라고 부를만한 이가 없었다. 그들의 방침은 오직 여섯이서 하나, 하나가 여섯. 단지 그뿐. 하지만 언젠가부터 오소마츠와 다른 형제들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오소마츠는 형제들 중에서도 특출나게 싸움에 능했고 뒷세계에서 일어나는 더러운 일들의 경황을 파악하는 눈도 좋았다. 정말이지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오소마츠를 제외한 다른 다섯 형제들은 그게 세상의 순리인 마냥 오소마츠에게 복종했다. 오소마츠는 유난히 다른 형제들과 격이 다르다는 걸 그들은 몸에서부터 익혀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본인이 가장 느끼지 못하는 것. 오소마츠는 다른 형제들이 어느 날인가부터 자신만을 따로 ‘형님’이란 호칭으로 부른다는 걸 깨닫고서야 형제들이 자신을 상위의 존재로 취급한단 걸 알았다. 반발할 법도 한데 오소마츠는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너무 당연한 일처럼. 그렇게 보스란 존재가 없던 마츠노 일가에 오소마츠라는 보스가 생기고, 그에게만 따로 보스의 방이 생기면서 그는 그런 버릇이 생겼다. 밤에는 무언가를 끌어안고 자는 버릇.

 

그것은 늘 곁에 있던 형제들이 어느 날인가 멀어지면서부터 생긴, 그런 본능적인 자기 방어 기제와 같은 것이다..

 

“아키쨩은?”

“레이디는 방 밖으로 나서더군. 오소마츠, 이제 그만 여자를 풀어주는 게 좋지 않겠나. 그녀를 풀어줘도 그녀는 다시 마츠노 조직에 잠입하지 않을 거야. 널 죽이러 오지도 않을 거고. 그런 위험이 사라졌으니 이제 여자를 풀어준 뒤 다신 보지 않는 편이 더,”

“싫어.”

“오소마츠.”

“싫다고 했어, 카라마츠.”

 

오소마츠는 두 흑색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표정을 굳혔다. 마치 두 눈에서는 붉은 광택이 도는 것만 같았다. 아아, 그래. 오소마츠는 마츠노 조직의 보스. 카라마츠는 척추가 뻣뻣하게 굳어지는 걸 느끼더니 억지로 무릎을 굽혀 침대 밑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내 말, 다시 반복하게 하지 마라.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래, 내 앞의 이 사람은 늘상 멍청한 짓만 골라 하는 그의 형님이 아니다. 엄연한 마츠노 조직의 단 하나뿐인 보스다.

 

Yes, My Boss.

 

카라마츠가 들릴 듯 말 듯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야 오소마츠는 다시 표정을 풀어 싱글싱글 웃었다. 좋아, 아키쨩을 찾으러 가볼까? 오소마츠가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서야 카라마츠는 굽혔던 무릎을 펴고 자리에 똑바로 설 수 있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여자를 내보내는 걸 포기해야할 것 같다.

 

“이치마츠 씨. 반창고를 하나 얻어가도 될까요?”

“뭐야.”

“종이에 손을 베여서요. 막 엄청 심한 건 아닌데 어디 닿을 때마다 쓰려서 반창고라도 붙이게요.”

 

이치마츠는 퀭한 눈으로 빤히 아키라를 보다가 조용히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서 적당한 크기의 반창고를 꺼내더니 그는 연고 하나와 함께 아키라에게로 던졌다. 역시 전직, 아니 현직일지도 모르는 암살자. 아키라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그것들을 안전하게 캐치했다.

 

“오소마츠 형은?”

“아직 안 일어나셨어요. 카라마츠 씨가 깨우러 들어간 것 같던데.”

 

까꿍! 아키쨩! 이치마츠네에 있었구나. 아키라는 흠칫 놀라 뒤를 보았다. 붉은 셔츠에 정장 마이를 어깨에 걸친 오소마츠는 헤실거리는 얼굴을 하고서 아키라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아키라는 푹 한숨을 쉬었다.

 

“아키쨩. 나랑 산책 나가자. 정원으로.”

 

아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마츠노 조직의 안에서 그녀가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키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소마츠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얼굴로 아키라의 손을 끌었다. 가자, 아키쨩. 오소마츠는 그곳을 떠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수고해, 이치마츠.

 

“저 여자, 마츠노를 나가긴 글렀군.”

 

이치마츠는 무릎 위에 앉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카라마츠는 아직도 여자를 내보내는 걸 포기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이치마츠는 달랐다. 칸자키 아키라라고 하는, 적대 패밀리의 암살자인. 아니 암살자였던 여자는 이제 마츠노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오소마츠의 눈에 띄었으니까. 오소마츠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걸 쉬이 내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특히나 여자는 오소마츠의 눈에 들었다.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일찍이 이곳을 나가는 걸 포기하고 얌전히 오소마츠의 예쁨이나 받으면서 적당히 조용하게 지내는 것뿐이다.

 

“썩 나쁜 여자도 아니고.”

 

조용하게 지내고,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고, 이치마츠가 뭔 거친 말과 괴상한 행동을 해도 그러려니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치마츠는 그런 아키라가 마음에 드는 편이었다. 남들과는 다른 행동, 다른 말을 하는 이치마츠를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여주는 건 그의 형제들뿐이었으니까. 형제들을 제외한 타인으로는 아키라가 처음이었다. 거기다 그런 말이 있잖은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고. 이치마츠는 그 말을 믿는 쪽이었다.

 

“오소마츠는 잠을 제대로 못 자나요?”

 

햇볕이 따뜻하고 날씨가 화창한 날이다. 여섯 형제 중 삼남이 가꿨다는 장미정원은 꽃봉오리가 싱그럽고 벌써부터 향긋한 내음을 풍긴다. 그 안에서 웬 돗자리를 펴고 앉은 오소마츠와 아키라. 옛날부터 해보고 싶었다더니 어디서 식탁보 같은 걸 가져와 돗자리랍시고 펴고 앉았다. 아키라는 오소마츠가 하는 걸 그대로 보고 있더니 아무 말 없이 그 위에 조신하게 다리를 모으고 앉았다. 오소마츠는 그런 아키라를 보고 눈을 빛내며 허락없이 아키라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아키라는 한 소리 하려다가 행복한 표정을 짓는 오소마츠를 보고 입을 닫았다. 이 사람이 멋대로인 게 지난 한 달 동안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다.

 

“오소마츠는 잠을 제대로 못 자나 봐요.”

“응?”

“처음 오소마츠의 침실에서, 오소마츠와 한 침대에 눕고 싶지 않다고 제가 그랬었잖아요. 그래서 오소마츠의 침대 밑에 침상을 펴고 잤었는데 그때 오소마츠는 거의 매일같이 잠을 못 자고 있던데요.”

“에. 알고 있었어?”

“저, 그래도 암살자거든요? 웬만한 일반인보단 월등히 감각이 예민해요.”

“흐음.”

 

오소마츠는 비음을 흘리며 그냥 웃었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그는 약간 몸을 웅크렸다. 마치 동물처럼. 상처받은 짐승이 그렇게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잠을 청한다던데. 아키라의 머릿속엔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잡지식이 스쳐지나갔다.

 

“나 그래도 요즘은 잘 자.”

“너무 잘 자서 탈이죠.”

“아키쨩 덕분인걸.”

 

확실히 아키라가 오소마츠의 옆자리에서 잠을 청하면서부터 오소마츠는 전보다 편히 잠을 자는 것 같았다. 물론 순전히 오소마츠가 매일 징징거리는 바람에 몸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는 서약 끝에 허락한 것이지만. 여튼 오소마츠는 아키라를 품에 안기는 해도 어찌 해보려 손을 대진 않았다. 아키라는 거기까지 봐준다는 생각으로 거의 열흘 간 오소마츠의 품에 안겨서 잠을 잤다. 열흘쯤 지나니 익숙해지는 것도 같아서 살짝 미묘해지려는 참이다. 오소마츠는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옆에 누가 없으면 잠을 잘 못 자서. 하지만 보스가 되가지고는 형제들 옆에서 잘 수 없잖아. 그렇다고 매일 밤 옆에서 같이 자줄 여자를 구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고. 오소마츠는 뒷말을 흐리더니 고롱고롱 작게 코를 골며 잠들었다. 아키라는 습관처럼 오소마츠의 머리를 쓸다 살며시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내리 그었다. 오소마츠는 아키라 앞에서만큼은 무방비한 모습을 보인다. 대체 왜.

 

그녀는 엄연히 오소마츠를 암살하러 온 암살자였다. 그녀가 속해있던 조직은 천애 고아였던 그녀를 주워다가 혹독한 훈련을 거치게 하며 한 명의 몫을 하는 암살자로 길러냈다. 그 뒤로는 훈련, 훈련, 실전 임무, 훈련, 훈련, 임무. 그런 나날의 반복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오소마츠는 그런 숱한 표적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왜.

 

“왜 죽이질 않는 걸까.”

 

처음 몇 번은 암살을 시도하긴 했다. 그럴 때마다 오소마츠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장난처럼 넘겼지만. 하지만 보름쯤 지난 뒤엔 아키라 자신도 오소마츠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그만뒀다. 통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뒷세계에서 잔혹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마츠노의 보스 오소마츠는 소문 값의 절반도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물론 적인 이들에겐 그 무엇보다 비정하고 잔인하지만 제 사람들에겐 무척이나 푼수 같고 능청스러운 사람이었다. 오소마츠에게 있어 아키라 자신은 이미 그의 사람이나 마찬가지였고, 아키라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들 오소마츠는 그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대했다.

 

혼자 자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언젠가 들었던, 울적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아키라는 밤이면 밤마다 마치 어미가 아이를 품는 것처럼 오소마츠를 품에 가득 끌어안고 잠을 청한다. 오소마츠는 그래야만 잠에 들 수 있었다. 이렇게 약한 사람이 그렇게나 비정한 뒷세계의 군주라니. 참 웃기지도 않는 말이다.

 

“슬슬 조직에서 날 찾으려나.”

 

아키라가 자세를 좀 바꾸려 몸을 뒤틀자 오소마츠는 귀신같이 팔을 뻗어 아키라의 손을 잡았다. 오소마츠가 잠에서 깼나 싶어 살펴보지만 그는 아직도 잠에 빠진 상태다. 아무래도 무의식 중의 행동이었다.

 

“음. 근데 안 놓잖아, 이거.”

 

오소마츠는 생각보다 악력이 세다. 결국 아키라가 오소마츠의 손을 푸는 걸 포기하고 다시 자세를 추스려 앉았다. 오소마츠는 세상 최고 편한 자세로 아키라의 무릎을 베고 낮잠을 즐기는 중이었다.

 

“어쩔 거예요, 오소마츠. 저. 제 조직으로 돌아가 봐야 하는데 당신 때문에 못 가고 있어요.”

 

실은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었다. 오소마츠가 뛰어난 보스이긴 하나 그녀는 언제나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내던 엘리트였다. 그런 그녀가 오소마츠의 눈을 속이고 마츠노 조직을 빠져나오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오소마츠의 아래엔 그녀를 내보내고 싶어 하는 그의 형제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오소마츠 몰래 빠져나간다 해도 모르는 척 눈을 감고 귀를 닫을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빠져나가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그녀 자신도 모르겠다.

 

“몰라요. 왜 그랬는지. 그러니까 다 당신 탓으로 해둘 거예요. 나, 당신 때문에 이제 조직에도 못 돌아간다고요.”

 

아키라가 조용히 속삭이며 오소마츠의 머리를 쓸자 오소마츠는 기분 좋은 듯 콧소리를 흘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떨 때는 한 조직의 보스, 어떨 때는 여섯 형제의 장남, 또 어떨 때는 한 없이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는 그가 유일하게 바라는 건 칸자키 아키라,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가 그녀의 조직에 거둬지고 나서 그렇게나 자신을 원하는 이를 만나본 적이 있던가.

 

답은 아니.

 

아키라는 흔치 않은 미소를 띠고 다시 한 번 오소마츠의 머리를 쓸었다. 정말이지,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날이 참 맑다. 해가 쨍쨍, 바람은 서늘하다. 소풍 나올 날은 기가 막히게 잘 잡은 것 같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저 멀리 오소마츠의 형제들이 보였다. 장미정원을 가꾸는 작정대장, 삼남 쵸로마츠. 언더보스인 카라마츠, 늘 활기찬 돌격대장 쥬시마츠. 머릿속에 구렁이 천 마리쯤 넣고 다닐 법한 정보요원 토도마츠. 그리고 저택 안 2층 응접실 테라스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이치마츠.

 

“오소마츠. 형제분들이 찾고 있어요.”

“응. 으응?”

“이만 가야해요.”

“가지 마. 가지 마, 아키쨩. 해달라는 건 다 해줄 테니까.”

“전 안 가요. 하지만 오소마츠는 가야할 걸요?”

“응. 응?”

 

오소마츠는 잠이 덜 깨 비몽사몽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에 일일이 아키라가 답을 하면서 오소마츠의 잠은 슬슬 깨고 있었다.

 

“아키쨩?”

“네, 왜요?”

“방금 그,”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오소마츠는 자신이 잠결에 잘못 들었나 싶어 까치집 지은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잘못 들었겠지. 아키쨩은 늘 나한테 자신을 내보내달라고 하는 걸. 머리를 흔들고 기지개를 펴며 몇 발자국 앞서 가는 오소마츠.

 

날이 맑다. 하늘은 파랗다. 바람은 적당히 서늘하고 장미 정원은 언제나처럼 싱그럽다.

 

거짓말을 고하기엔 너무 좋은 날이다.

 

아키라는 오소마츠의 뒤를 따라 걸으며 아무도 보지 못할 미소를 지었다. ─오소마츠, 당신이 날 필요로 하니까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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