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피아au
처음 타다요시가 유품이라고 전해 받았던 것은 깨진 아버지의 손목시계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검게 그을려진 넥타이핀이 그 옆을 자리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조직에서 커오던 타다요시는 제 부모가 죽음에 내몰리는 것을 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의 자신은 총을 잡는 법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린아이였으니까.
남아있는 조직원들을 살리기 위해, 혹은 본인 측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등 다양한 이유로 보스가 자폭용, 흔히 말하는 버리는 카드를 준비해놓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타다요시의 부모가 그런 역할이었으니까. 그들은 항상 몸에 폭탄을 지니고 있었다. 정장의 와이셔츠 아래, 심장과 제일 가까운 왼쪽 가슴에 하나, 그와 반대에 위치한 오른쪽 허리에 하나. 심장과 맞닿은 폭탄은 항상 일정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멎으면 자연스레 터지는 방식이었고, 타다요시도 12살이 된 직후에 몸에 항상 그 폭탄을 지니고 있었다.
상황이 언제 나빠질지 알 수 없으니, 만일을 대비하자는 잘나신 보스의 명령이었기에 그들은 어떤 일이든 함께 다녀야 했다. 당시에는 어렸던 덕분인지, 순전히 그들의 눈에 띄지 않은 덕분인지 타다요시는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제 목숨을 붙잡고 있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대가로 다른 조직원의 몸이 터져나갔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는 의도치 않게, 사람의 생명이 손쉽게 사라진다는 것을 일찍이 알게 되었다.
그리도 타다요시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했던 그 날이 자신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당시에는 확신하고 있었다.
‘엎어.’
지금은 자신의 선배인, 주황색 넥타이가 인상적인 남자가 입을 열었고, 뒤에 서 있던 남자가 가볍게 소파를 뛰어넘으며 삽을 휘둘렀다. 총이 아니라, 삽? 의아함을 표현할 새도 없이, 타다요시는 뒤로 몸을 물려야 했다. 위협적으로 휘둘러진 삽과 유독 눈에 띄는 노란색 안광이 흡사 배고픈 짐승의 것과 같아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거래의 파기는 곧바로 피와 총성으로 이어진다. 조직의 간부가 먼저 자리를 피하고 다른 조직원들은 시간을 번다. 다른 조직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몰랐지만, 그가 있었던 곳의 규칙은 그러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던 간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이제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죽이면 안 돼?’
‘안 돼. 저 새끼가 죽으면 우리도 다 같이 죽는 거야.’
마치 오늘 저녁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 같은 어투로 말하며 자신의 와이셔츠를 들추던 모습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았다. 그때 만약 자신의 몸에 폭탄이 없었다면 삽에 머리가 깨지든, 총알이 머리에 박히든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라고 타다요시는 확신했다. 아마 몸에 폭탄을 지닌 이후로 처음으로 폭탄을 지니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일 것이다.
그 직후에 어떻게 되었더라. 당시에 피를 많이 흘렸던 탓에 정신이 혼미해,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타다요시, 듣고 있나?”
“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타다요시는 허리를 폈다. 정신 차리자.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애써 떠오르려는 생각을 끄집어내린 타다요시는 제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거는 키리시마에게 조용히 답했다. 힐끗 타다요시를 잠시 바라본 그는 피투성이가 된 일본도를 가볍게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그쪽도 끝났어~?”
“아, 네!”
“아아.”
떨어져 나간 방문을 밟으며 들어선 히라하라는 난장판이 된 방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그 뒤를 따라 조용히 들어선 타가미는 쓰러져있는 책장의 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온통 피와 먼지로 더럽혀진 히라하라와 달리 타가미는 먼지만 조금 묻은 정도였지만 표정에는 짜증이 잔뜩 서려 있었다.
“이거 우리가 다 나설 일은 아니잖아.”
“보스의 명령이다. 군말은 받지 않는다.”
“귀찮게.”
쯧. 소리 나게 혀를 찬 타가미는 제 발에 채이는 상대 조직원의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상대 조직의 크기는 상당했지만, 본인들의 조직만큼은 아니었고 한 번 자신들과의 거래를 파기시킨 전적도 있었다. 그때 직접 거래에 나왔었기 때문에 타가미는 상대 조직의 수준 정도는 간단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런 멍청이들은 밑에 있는 놈들로 충분하다고 말했건만.”
“…하하.”
“웃지 마. 네 얘기도 포함한 거니까.”
자신을 노려보며 조용히 으르렁거리는 타가미의 말에 타다요시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에 타가미의 얼굴에 더한 짜증이 서렸지만, 그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만 돌렸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으음. 평소에도 자신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은 사람이니 당연히 한 소리 할 줄 알았는데.
“타다요시, 이쪽으로.”
“아, 네.”
방 밖에서 고개를 내민 사에키는 타다요시에게 따라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뒤에서 히라하라가 ‘잘 다녀와~’하고 부르는 소리에 가볍게 묵례를 하고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보스께서 오라고 하셔서 말이야. 언제나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건네는 말에 타다요시는 그렇군요, 하고 조용히 답했다. 군데군데 쓰러져있는 상대 조직원들의 시체가 보였지만 사에키는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단정한 발걸음으로 앞서나갔다. 타다요시는 익숙한 배지를 달고 있는 시체들을 피해 걸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바닥에 흩어진 배지에 힐끗 시선을 주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길지 않은 복도의 끝자락에 있는 방 앞에서 사에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문의 양옆에는 원래는 보초를 담당하는 역할이었을 이들이 머리와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니었기에 타다요시는 애써 사에키의 뒤통수에 시선을 고정했다. 똑똑. 사에키가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사에키는 문의 옆으로 비켜서며 문을 조금 열어주고는 타다요시에게 들어가보라며 가볍게 턱짓했다.
“부르셨어요, 보스.”
타다요시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곧바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쪽 일은 다 끝났나?”
“아, 네. 다 끝났습니다.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흐음. 타다요시의 대답에 롯카쿠는 작게 목소리를 흘렸다. 긴장한 듯 어깨를 움츠린 타다요시를 빤히 바라보던 그는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타다요시의 앞으로 다가왔다. 시선을 내리고 있던 타다요시의 시야에 익숙한 구두 끝이 보였고 바로 앞에서 옅은 담배 냄새가 났다.
롯카쿠는 딱딱하게 굳어있는 타다요시의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다 톡톡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 에? 당황한 타다요시가 얼굴을 붉히며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당황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타다요시의 특성을 잘 알고 있던 롯카쿠는 종종 일부러 그를 당황하게 할 일들을 하곤 했다. 가령 예고 없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은 지금처럼.
“…저기, 보스…”
“낯익은 얼굴이지?”
결국, 견디다 못한 타다요시가 어렵게 입을 열었으나, 롯카쿠의 말에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눈에 띄게 몸을 움츠린 타다요시는 옆으로 비켜서는 롯카쿠의 뒤로 익숙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잊을려야 잊을 수 없는.
“…그럼요.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네요.”
타다요시는 피투성이가 된 채 방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갓난아기였을 적부터 봐온 얼굴이었고 자신을 거의 성인까지 키워준 조직의 보스이면서, 타다요시의 부모와 타다요시를 사지로 내몰았던 사람이었다. 무슨 일을 당했는지 짐작도 하기 싫을 정도로 사내는 엉망이 된 채 엎어져 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는지 눈동자만을 굴리던 그는 타다요시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시선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의연한 얼굴로 그를 마주하던 타다요시를, 롯카쿠는 톡톡 가볍게 밀어주었다. 그에 응하듯 타다요시는 바닥에 형편없이 쓰러져있는 이전의 자신의 보스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간 잘 지내셨어요?”
“타다… 죽은 게…”
“그러게요. 다행스럽게도 말이죠.”
“어떻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어지지 않는 그의 말에 타다요시는 쓰게 웃었다. 대답을 촉구하는 사내의 시선에도 타다요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정장 겉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의 눈앞에 내려놓았다. 사내의 조직 배지였다.
“제가 이걸 아직 안 버린 줄 몰랐어요. 돌려드릴게요.”
“이걸 왜… 아니, 나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어차피 당신이 버린 목숨인데.”
진심으로 그걸 왜 묻느냐고 되묻는 타다요시의 목소리에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이마에 닿은 총구 때문일지도 몰랐다. 다급해진 사내가 거세게 무어라 소리쳤지만 타다요시의 귀에 제대로 들어오는 말은 거의 없었다. 살려달라고 비는 것 같기도 했고 용서를 구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총성이 울렸고 그와 동시에 핏자국이 터져 나왔다.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남자의 머리를 내려다보던 타다요시는 한 손으로 제 입을 가리며 몸을 돌렸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아 입술을 꼭 깨문 타다요시는 저를 바라보는 롯카쿠와 눈이 마주쳤다. 얼핏 그의 눈에 다정한 빛이 서렸다고 생각할 즈음, 롯카쿠는 성큼 다가와 타다요시의 팔을 잡아끌었다.
“수고했다. 이만 돌아가지.”
‘그럼 살려줄 테니, 따라오는 건 어떤가.’
어라.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 돌아가자고 했다. 못 들었나?”
의아하다는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는 롯카쿠에 타다요시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걸까. 방 밖으로 나서는 롯카쿠의 뒤를 따라 나가던 타다요시는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조금 열려있는 틈 사이로 바닥에 놓여있는 사내의 손이 보였다. 그것을 잠시 바라본 타다요시는 조금 개운해진 얼굴로 롯카쿠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