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메신저 장르의 드림으로, 스포가 다분합니다. 주의해주세요!
01.
너희 모두를 초대하고 싶어. 이 곳, 꿈의 낙원 마젠타로. 방식이야 어떻든 좋아. 너희 모두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나는 기쁠 거야. 그 아이도 분명 기뻐하겠지?
02.
“누나, 집에도 없어요.. 아직 연락도 안 받고.”
전화기 너머로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점점 흐려지는, 물기가 서린 목소리. 그에 루시엘은 깊은 한숨을 쉬더니 조금 쉬어,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를 마쳤다. 김유성이 사랑하던 그녀가, 사라졌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숨겼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누가? 저가 아는 시아는 해킹을 할 줄 몰랐다.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기술도 아니니까. 깊은 생각에 빠진 루시엘의 머릿속에는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다. 그러다 결국 부질없음을 깨닫고는 제 컴퓨터에 펼쳐진 자료들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어딘가, 이 알고리즘을 풀 방법이 나와 있겠지.
03.
“여자, 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홀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숲을 거닐던 여자에게 백색의 머리칼을 가진 남자가 한껏 표정을 찌푸린 채 다가가 물었다. 여자가 이곳에 오는 날은 거의 손을 꼽을 정도로 수가 적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는 이곳에서 지내며, 제 흔적을 감추어 달라고 제게 부탁하니. 수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두에게, 마법을 걸 거야.”
마법? 여자의 생뚱맞은 대답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마법.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에게 마법을 걸 거야. 천천히 한 명씩, 모두에게.’
여자가 이곳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향해 말했다. 자신을 도와달라고. 물론, 그걸 수용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가 좋아할 만한 조건을 더하면서.
04.
비탈길을 오르고, 아직 포장되지 않은 숲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동화책에 나오는 성처럼 보이는 건물. 이렇게 큰 건물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여긴 대체 어디에요?”“나도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시아누나가 있다는 사실 뿐이지.”
루시엘은 결국 그 알고리즘을 푸는 것에 성공했고, 여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장소였지만.
루시엘은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근처를 돌아보았고, 곧 보안 프로그램을 해킹하는 걸 성공할 수 있었다.
05.
“생각보다 빨리 왔네.”
“707.. 루시엘..”
“그렇게 보고만 있는 거야? 그렇게나 원하던, 보고 싶었던 사람이잖아?”
수십 개의 화면 너머로 둘의 행동을 지켜보던 남자가 여자의 말에 결국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더니 방을 나섰다. 아아, 조금만 더 지켜보는 걸로 할까.
06.
루시엘은 차라리 이것이 전부 꿈이었다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진실들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백발의 사내, 제가 그렇게도 그리고 그리던 사내.
“나도 루시엘이라고 불러줄게. 707은 이름 같지도 않아서 말이야.”
“형, 어서 나가요. 빨리!”
그게 마지막이었다.
07.
“다음에는 낙원에서 전부 함께인 거야.”
루시엘은 그 방에서 도망쳐 나와서도, 상황을 정리하지 못해 당황했다. 그렇게 한참을 혼란 속에서 홀로 중얼거리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쳐다본 시선의 끝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자신에게 소름끼치는 웃음을 보이며 제 머리를 매만지는.
아아, 불쌍한 루시엘. 다음에는 너도 꼭 구원받기를.
그녀에게 말을 걸 틈도 없이, 여자는 제가 도망쳐 나온 그 문 너머로 들어가 버렸고, 이내 찰칵, 하고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08.
“누나..?”
“그러니까.. 최세란, 이었던가. 이제 슬슬 돌아가줄래?”
시아가 잠시 절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자와 시선을 맞추더니, 그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 옆에 서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그리곤 천천히, 발걸음을 떼 자신을 한 없이 떨리는 눈동자로 곧게 직시하고 있는 남자에게로 다가가 그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아, 나의 아름다운 별아.
“내게 명령하지 마.”
“전부 너의 구원자님의 뜻이야. 루, 세영이는 다시 올 거야, 분명. 그러니 돌아가.”
시아가 남자의 투명한 액체로 가득 찬 자수정의 눈을 제 손으로 가리고는 세란을 향해 말했다. 여자가 이곳에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마주하는 듯한 차가운 표정. 예전의 저를 쳐다보던 그 시선.
“멍청한 여자.”
시아의 압박감에 눌린 것인지, 구원자를 등에 업은 시아가 두려운 것인지. 세란이 답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문을 박차고 나섰다.
귀엽지 않네, 저런 세란이는.
시아가 세란이 방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남자의 얼굴에게서 제 손을 떼어내었다. 그리곤 찬찬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유성아. 나랑 같이 낙원에서 지내자.”
“누나.”
“너의 모든 행복은 이곳에 있어.”
“누나.. 같이, 돌아가요. 응?”
둘 모두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감정의 종류, 그 깊이. 전부 달랐다. 서로 다른 감정을 담은 웃음. 그 웃음의 가면 속에서, 애타는 유성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것인지 시아가 계속해서 남자의 뺨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유성의 의견 따위 중요시 여기지 않던 일이었으니 들을 필요조차 없었을지도.
“너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야. 모두의 낙원이니까.”
그것이 유성의 기억 속 마지막으로 들은 시아의 목소리였다.
09.
시아는 제 품에 쓰러지다시피 안긴 남자를 한참이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그를 안아들고 제 방으로 향했다.
이 곳, 마젠타에서. 너와 나 함께 영원히 행복하자. 나의 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