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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명탐정코난 검은 조직 기반

 

기억나지 않는다. 라는 표현은 잘 어울렸다. 베일리스는 아무런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조용한 밤에 길에서 깨어난 그녀는 고작 걸어 다니는 법 정도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이 남자에 대해서도 베일리스는 아는 것이 없었다.

“머리카락 예쁘네요.”

남자의 은색 머리카락으로 손을 뻗어 잡았다.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고, 베일리스는 긴 머리카락을 계속 만졌다.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이 의미를 품지는 못할 것 같아 베일리스는 말하지 않았다.

“너는 왜 살아있는 거지.”

“왜냐하면 제가 베일리스니까요.”

아는 것이 없었지만 답했다. 베일리스는 기억하는 것이 없어도 답할 줄 알았다. 그녀가 늘 하는 행동이었다. 항상 진은 저것에 대해 지적했었다.

이마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차갑고 검은 것. 사람을 단번에 죽일 수 있는 것이었고, 베일리스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일 생각인가요?”

베일리스는 만지던 진의 머리카락을 손에서 놓았다.

“물론.”

답을 신호로 삼아 길가에 가득 퍼진 것은 총성이었고, 바닥을 가득 물들인 것은 사람을 구성했던 핏물이었다.

 

*

 

베일리스는 아는 것이 진 밖에 없으니, 좋아하는 것도 진 밖에 없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기억을 다시 채워가기 시작할 때, 옆에 있던 것은 진이었다.

“어디 갈려고요?”

매일 외출하는 진에게 베일리스는 그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나가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이 집 밖에 무엇이 있는지 베일리스는 알지 못했고, 알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진이 향하는 곳에 대해서는 알고 싶었다. 하지만 진은 답해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단 답을 들은 적은 없다.

“올 때 책 가져다줘요.”

“그래.”

진이 답해주는 것은 이 정도의 말 뿐이었다. 진이 가져오는 책들에는 꼭 핏자국들이 묻어있었지만 괜찮았다. 베일리스는 그것에 대해서 큰 불만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가끔 진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읽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만 불만이 있었다.

 

진이 베일리스를 아직 살려두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직 내에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베일리스와 유사한 시체는 발견되었고, 피도 발견되었으며, 총성 역시 들렸다. 그리고 죽인 사람이 진이라는 점에서 의심은 더 이상 없었다. 진은 조직 내에서 신뢰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비밀은 완벽하게 숨겨지지 않는다. 제일 먼저 알아챈 것은 베르무트였다.

“베일리스는 오른쪽 책을 더 좋아했어.”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걸어오는 말에 진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베르무트가 이것을 위에 말하지 않을 것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렇게도 싫어하는 노크였잖아, 왜 살려 둔거야?”

흔히들 노크라고 부르는 베일리스는 독일첩보기관인 BND 소속의 스파이였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조직에 남아있지 않았다.

“설마 어릴 때부터 좋아한다고 따라다녔던 아이라서 정이라도 생겼던거야?”

화내는 것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반응 없는 진의 모습에 베르무트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으려 했다.

“만약이라도 그 애가 기억을 찾으면 뭐라고 말할 생각이야?”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얼굴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권총을 신경 쓰지 않고 베르무트는 웃었다. 진짜 죽이지는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정말 궁금한 것뿐이야.”

베르무트는 마치 어린 연인을 타이르듯 천천하고 느리게 말했다.

“죽일거야, 진?”

 

*

 

죽일거다. 라는 대답을 한지는 불과 4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진은 다시 돌아갔고,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 기억의 마지막에는 당신이 없었는데.”

베일리스는 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진의 손에는 이미 총이 들려있었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 살려준 거야?”

의문을 품은 질문에 진은 답하지 않았다. 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이 하는 것은 총을 쏘기 위한 준비뿐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으니, 사랑 때문은 아니겠지.”

베일리스는 진이 자신에게 답을 하든 하지않든 신경 쓰지 않았다. 죽지않는다, 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베일리스는 생각을 계속 이었다. 다만 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말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이제 더 잘 어울렸다. 튀긴 피는 바로 뒤에 놓인 책들을 붉게 물들이기 충분했다.

공간은 조용했다. 진은 시체를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시체의 곁을 맴돌았다. 베일리스가 찾던 죽이지 않은 이유를 이제는 진이 찾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녀가 베일리스였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다. 라는 이유는 너무나도 멍청하게 들려왔다. 진은 그 멍청한 감정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에 영영 보이지 않을 다른 이유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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