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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By. 카논(@do_u_darling)

 

 

그녀는 어느 쪽이냐고 하면 동화에 나오는, 속히 말하는 ‘나쁜 쪽’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마담 티에라, 라고도 불리는 그녀는 당시의 수많은 소녀들이 교육을 받아야 했던 요조숙녀와는 현저히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빙글빙글 웃고 있었지만 다른 손으로는 어느 새인가 권총을 쥐고 상대방 가슴에 꽂아 내리기도 했고, 목소리와 말투는 감미롭고 부드럽기 짝이 없지만 가끔 말하는 내용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거칠고 날카로웠다. 가슴이 훤히 파인 붉은 드레스, 새하얀 퍼 숄을 몸에 두른 그녀는 게임과 포커를 사랑하는 여자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쾌락주의자라고 밝힌 그녀는 남자와의 관계 역시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연유로, ‘이 쪽 세계’에서 그녀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멜로가 그런 여자와 함께 하게 된 것은 겨우 몇 달 전인, 극히 최근의 일이다. 단순히 그녀와 자신의 관계는 살인청부업자와 고용자의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라이플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입 소문이 자자했고, 자신은 단순히 그 실력을 이용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녀에게 의뢰를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녀는 돈을 받으면, 내지는 그녀가 자주 원하는 다른 대가를 받게 되거든 그에 상응한 일을 했다.
그렇기에 오늘도 그는 그녀의 방을 찾아왔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그녀에게 의뢰하기 위해서,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마호가니로 만들어진 호텔의 방문을 열어젖히자,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담백하고 고급스러운 향이 그를 제일 먼저 반겼다.

“오, 달링. 오늘은 일찍 왔네?”

몇 발자국을 걸어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의 맘에 든다는 이유로 그녀가 제멋대로 붙인 ‘달링’이라는 명칭에 익숙해지기는 아직 조금 거부감이 있었다. 그녀의 방은 언제나 자욱하고 짙은 연기가 가득했다. 몇 번을 찾아와도 그 연기만큼은 익숙해지지 않아 이내 기침을 하고 말자, 여자는 어울리지 않게 푸스스, 마치 소녀처럼 해맑게 웃었다.

“오, 달링은 내 방을 찾아올 때마다 기침을 하네. 그래도 나름대로 동방의 좋은 향을 쓰고 있는데, 맘에 안 드나 봐?”
“네 방은 마약소굴이야.”

인상을 찡그리면서 제 얼굴을 가볍게 쓸어 만지는 듯한 연기를 두 손으로 휘휘 내저어 내쫓고 나니, 여자가 다시금 해맑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약소굴이라. 오, 어떤 말로는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네.”

그의 앞에서라면 뭐든지 말하고 마는 그녀였기 때문일까, 그녀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그 말을 인정했다. 그녀가 부업으로 마약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것도 최근의 일이다. 혹 경제적으로 불편해지거든 말해달라는, 그녀의 말을 비로소 그는 떠올렸다.

“이번에 피운 향은 맘에 들어 해줬으면 좋겠네. 동방의 일본에서 들여온 백연의 향이야. 새하얀, 연꽃에서부터 채취된 향이지. 달링도 담백한 향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듣기론, 백연 향은 일본에서 장례식에 쓰이던 것이라고 하던데.”

그의 말에 티에라는 상황이 맘에 들지 않은지. 팔짱을 끼고서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가 원하던 상황이 어떤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다. 보나마나 ‘그럴 듯한 분위기’를 조성해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겠지. 그러나 그는 오늘만큼은 그녀가 원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게 할 것이다. 이전에 방심했다 제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는 제 몸이 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네 수완은 이미 다 알고 있어, 티에라.”
“…오, 과연 그럴까? 내가 지금 피우고 있는 향이 또 다른 거면 어떡하려고? 이전의 달링처럼, 완전히 변모해버릴지도 모른다고?”
“만일 그랬더라면 네가 그렇게 무방비하게 있을 리가 없지. 같은 방법에는 두 번 다시 안 속아.”

티에라는 멜로의 대답을 듣고는 다시금 부서지듯이 웃었다. 똑똑하네, 하고 작게 덧붙인 그녀는 소파에 앉은 채로 고갤 들어 제가 앉은 소파와 비스듬하게 자리잡은 의자를 그에게 권한다. 순순히 그 자리에 앉자, 티에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심해, 달링.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그럴 리는 없으니까. 이전에 나도 호되게 당해버렸으니 말이야. 효능이 강력하다곤 들었지만 설마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안 그래? 며칠 동안 허리가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 사실, 아직도 아파.”
“…네가 마치 피해를 입은 것처럼 말하는데, 그 때 일은 꾸민 건 너고, 피해를 입은 건 나야. 가해자는 너라고.”

멜로가 읊조리자, 티에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무쪼록 달링이 날 그렇게 만든 건 맞는 말이잖아? 나는 설마 그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니까. 그 달링이, 글쎄.”
“그만해. 오늘은 너와 그런 시답잖은 수다를 떨려고 온 게 아니야.”

딱 잘라서 티에라의 말을 끊어버리자, 그녀는 이번에도 맘에 들지 않는지 팔짱을 낀 채 그를 빤히 쳐다본다. 멜로는 그 시선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티에라는 금방이라도 포기한 것인지, 짧게 쓴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금방 다시 밝은 미소를 입가에 띄워 보였다.

“…뭐, 아무래도 좋아. 그래, 그래서 달링은 오늘 내게 무얼 의뢰하고 싶은 거야?”
“예의 조직의 간부를 죽여줬으면 해. 우리에게 큰 방해가 되고 있거든. 원래는 내버려둘까 했는데, 역시 죽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거든. 어디서 죽이든, 상관없어. 시체의 처리도 네게 맡길게.”
“예의 조직이라면, 이전에 달링이 말했던 그들인가? 듣고 보니 총격전이 있었다던데.”
“녀석들이 먼저 걸어온 싸움이었어. 우리의 거래 요충지와 그들의 거래 요충지가 충돌해서 생긴 거였지. 나는 그 때 안타깝게도, 네가 붙잡는 바람에 자리에 없었지만.”

그렇게 내뱉고 나니 문득 위화감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그 날 일이 다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저를 붙잡은 건 이 여자다. 만일 티에라가 저를 그 날 그대로 돌려보냈더라면, 그 날 이 여자가 ‘그 향’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저도 그 총격전에 참가하고 있었겠지. 중요한 날에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보스에게 된통 혼난 그 날을 멜로는 잊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자신의 조직에 대한 일에 정신이 팔려, 어쩌다가, 누구 때문에 그 날 그 큰 격전에 참가하지 못했는지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일에 대해 변명하기에는 한참 늦기는 했지만, 멜로는 우선 이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네가 일부러 그런 거야?”
“…오, 무슨 말이야?”

티에라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방긋 웃었다. 그 미소가 거짓이 섞여있다고 느끼는 것은 필히 멜로 자신의 어정쩡한 감 때문이 아니리라. 티에라는 거짓말을 칠 때 버릇이 있다. 눈웃음을 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내뱉는다. 언뜻 봐서는 도무지 알아차릴 수 없는 아주 미세한 차이였지만, 눈치도 빠르고 무척이나 영리한 멜로였기 때문에 그는 금방 그 차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멜로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일부러 나를 그 날 붙잡고 있었냐고 묻고 있어.”
“…글쎄, 어떠려나. 내가 그들의 계획을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달링. 나도 한 때는 그들에게 고용된 적이 있었지만, 지금 나는 프리랜서니까.”

애매한 대답으로 제 질문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이대로 좀 더 캐묻는다면 그녀가 의도적으로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해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일이 끝난 지금, 그런 답을 들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고민을 하고 있자니, 입을 다시 연 것은 티에라 쪽이었다.

“그치만 달링, 나는 달링이 벌써 죽는 건 아깝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어.”
“…역시 네가 일부러 붙잡아뒀군.”
“그야 달링, 달링은 너무나도 훌륭한 남자인걸. 머리도 좋고, 자신의 목적에 대해 치밀하고, 불분명한 욕심도 갖고 있지 않아. 그런 사람이 일찍 죽어버리면 아깝잖아? 난 단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야.”

티에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숙였다. 얄팍한 가운 사이로 드러나는 살결로부터 온 방에서 풍기는 향의 내음이 아닌, 진한 향수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전에도 말했지만 달링. 나는 달링이 굉장히 맘에 든다니까.”

그녀는 붉은 매니큐어를 바른 손을 뻗어서 제 다리를 손으로 매만지기 시작했다. 티에라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쪽 사람들은 다 여자에게 흠뻑 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멍청하기도 하지. 머리가 똑똑한 녀석들은 별로 없는데다가, 다들 자신의 사리사욕에만 눈이 멀었어. 그렇지만 달링, 적어도 내가 여태까지 본 달링은 그런 사람은 아니거든.”
“…어떤 방법으로 네가 녀석들의 정보를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참견이야.”
“참견이 아니야, 달링.”

늘 부드럽던 그녀의 어투가 강해졌다. 멜로는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는 그녀의 손을 피해서, 다리의 위치를 바꿨다. 그러자 티에라는 손을 다시 거두더니, 이번에는 소파의 팔걸이에 턱을 괴었다.

“나는 정말 달링이 맘에 들었다니까. 몇 번이고 말하잖아. 좋아, 로맨틱하게 말하자면 반했다고 해줄게. 그럼 달링도 내가 왜 달링에게 그 날 그렇게 대했는지 알 수 있겠지? …오, 향은 내 취향이었으니까 이에 대해서는 이해해주고. 만일, 거칠어지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했거든.”
“……….”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말에 익숙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그녀가 본래 쾌락을 좋아하고, 몸을 아무데서나 굴리는 여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말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에 있다. 그녀의 말은 언제나 어딘가 믿기가 어려웠다. 티에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 나는 그냥 달링의 밑에서 일하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도 하고 있어. 달링도 날 고용해줄 거지?”
“내가? 너를?”
“왜? 달링에게는 좋은 일 아냐? 물론 내가 놀기 좋아하는 살인청부업자이긴 하지만 일을 할 때에는 제대로 한다고. 달링도 잘 알잖아?”

그녀가 하는 말은 옳았다. 그녀는 비록 놀기를 좋아하는 여자이긴 했지만 그녀가 여태까지 한 일 중에서 그녀가 실수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나도 이렇게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산하에 들어가서 일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게 좀 더 안전한데다가. 달링도 알다시피, 나에게 원한을 갖고 있는 자는 한 둘이 아니니까.”
“그래서 네 ‘보금자리’를 위해서, 나의 밑에서 일하겠다고 하는 거로군.”
“맞아, 달링. 내가 몇 년째 이 일을 해왔다고 생각해? 달링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다른 여자아이들이 예의 바른 걸음걸이를 배울 때에, 춤을 배울 때부터 시작한 일이라고. 이제 나도 좀 맘놓고 쉴 곳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티에라는 그렇게 내뱉고는 빙긋 웃었다.

“그러니까, 나를 데려가 줘. 어때?”
“…생각은 해보지.”

그렇게 말한 것은 멜로 자신이 판단하기에 그녀에게 이용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가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큰 병력이 되어줄 것이요, 더불어서 자신이 그녀에게 의뢰를 할 때마다 지불하는 경제적, 체력적 대가를 지불할 필요도 없어진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그 액수나 정도가 점점 많아져서 보스로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있던 찰나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애매한 대답을 한 것은 그녀가 또 쓸데없는 소리로 저를 붙잡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녀가 일전에 일부러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처럼,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말은, 내가 달링의 밑에서 일해도 된다, 라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는 거야?”
“나는 생각을 해본다고 했지, 너를 고용한다고 확정하지 않았어. 이건 나만의 판단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만 달링, 달링의 조직이나 달링의 보스를 두고서 생각해봐. 달링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 자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았지만, 그녀의 저의(底意)를 알 수가 없어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자, 티에라가 멜로를 부추기듯이 말을 덧붙였다.

“달링은, 내가 어때?”
“…쓸만한 여자라고 생각해.”
“그럼, 싫지는 않은 거지?”
“왜 자꾸 그런 거에 집착하는데?”

멜로의 질문에 티에라는 부서지듯이, 그녀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말했잖아. 난 달링이 맘에 들었다니까. 나는 달링이 좋거든. 좋아하는 사람에게 싫다는 말을 들으면 슬프잖아. 안 그래?”
“딱히 네가 싫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럴만한 이유도 없고.”
“오, 달링. 고마워. 나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 밖에서부터 장정 셋이 갑작스럽게 나타나더니, 소파에 앉아있던 멜로를 습격했다. 그들은 멜로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그를 제압했다. 멜로의 팔은 그들에게 붙잡혀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그렇게 외치며 저를 붙잡는 남자들에게 있는 힘껏 반항을 하지만 결국에는 두 팔이 구속되어 그녀 앞에 강제로 무릎을 꿇게 된다. 제 손에 감긴 수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한낱 인간에 불과하지 않은 금속을 깨부수는 것은 불가능했다. 티에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의 앞에 와 섰다. 고갤 들어서 그녀를 올려다보자, 티에라는 빙긋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다. 이번에도 당했다는 생각에 입술을 꾹 깨물고 만다. 눈을 돌려 저를 붙잡은 남자들에게 향하자, 남자들의 얼굴이 익숙한 것을 알아차린다. 제가 티에라에게 죽여달라고 의뢰한 자들이다. 그제야 멜로는 지금 상황이 어떤 것인지 예상했다.

“…처음부터 나를 없앨 목적으로 다가온 건가.”

수많은 조직원들이 여자와 돈으로 인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자신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실수를 범하고 말 줄이야. 만일 그녀가 자신을 상대 조직에게 팔아 넘기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꾸몄다면, 여태까지의 모든 일의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그녀는 이미 그 조직과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조직의 일정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녀는 그가 쉽게 죽지 못하도록 그 날 자신을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그녀가 자신이 의뢰한 자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로서 ‘직접적인’ 것이 아닌, 간접적인 것, 그러니까 그들의 소지품이나, 손가락 하나 등과 같이 부분적인 물건을 가져온 것도 어쩌면 그녀가 조직과 손을 잡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일시적으로 속이기 위해 마련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으면, 죽였다는 보고를 받은 그들이 이렇게 살아서 멜로를 내려다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티에라는 멜로의 말에 강하게 고갤 내저었다.

“무슨 말이야, 달링. 달링을 없앤다니. 어쩜 그런 무서운 소리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지금 나를 붙잡을 이유가 없잖아.”
“오, 달링. 부디 오해는 하지 말아줘.”

티에라는 방긋 웃었다. 몸을 숙이더니,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짙은 향수 냄새가 정신을 어지럽게 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달링이 굉장히 맘에 들었거든. 만났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뛰어난 두뇌도,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냉정한 모습도, 점잖은 말투도, 모든 것이 내 맘에 들었어. 달링의 이 예쁜 금발도 말이지.”

이번에는 손을 뻗어다 턱까지 내려오는 그의 금발을 손으로 집어다가 입을 맞춘다. 그리고는 그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달링, 기억해둬. 적어도 이 쪽 세계에서, 내가 얻지 못하는 건 없어. 나는 이 곳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야. …프리랜서로 일한 만큼,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누구보다 많거든.”

그 말이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꽤 큰 시간이 걸렸다. 잠시 뒤에야 티에라의 말을 이해한 멜로가 그녀를 노려보자, 티에라는 여느 때처럼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멜로의 주변을 둘러싼 남자들에게 지시했다.

“그를 옮겨줘. 대신에, 달링에게 생채기 하나 나면 너희들에게 주기로 한 보상은 없어. 1펜스도 없을 줄 알아.”

남자들에 의해 억지로 다시 일으켜 세워진다. 티에라는 손을 뻗어 그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제 등에 둘러지는 그녀의 팔이 문득 유독 가늘게 느껴졌다.

“아주 잠시 동안이면 돼, 달링. 그러니까 그 때까지 조금만 참아줘.”
“…티에라, 하나만 묻게 해줘.”

그녀에게 안긴 채, 멜로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넌 이제 나를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어떻게 할까?”

티에라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금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녀는 일부러 말끝을 흐리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마, 달링. 나는 달링이 더 좋은 길을 걸어줬으면 하니까 이런 일을 하는 거야.”
“…더 좋은 길?”
“그래, 달링. 이런 더럽고 무자비하기 짝이 없는 길보다, 더 나은 수많은 길을 알고 있거든. 훌륭한 달링에게 맞는 길이 있으니까. 나는 달링이 그 길을 걸어줬으면 좋겠어.”

티에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를 다시금 고쳐 안았다.

“왜 내게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야,”

티에라는 방긋 웃었다. 여태껏 지어보던 거짓이 섞인 미소, 부드러운 미소가 아닌 밝은 미소였다.

“나는 달링을 사랑하니까. 이대로 잃고 싶지는 않거든. 나도 사람이고 여자니까, 좋아하는 사람 정도는 있을 수 있지 않겠어?”
“사실 나는 네 말을 믿지 못하겠어, 티에라. …대체 어디에서 넌 나를 맘에 든다고 느낀 거야?”
“오, 그건 이미 말했잖아. 나는 달링을 만나자마자 그렇게 느꼈어. 달링은 알지 모르겠지만, 아, 이 사람이다,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야.”

티에라의 말이 어쩌면 단순히,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 있었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티에라가 다시금 웃더니 또다시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불쾌하기 짝이 없어 인상을 찡그리고 있자, 그런 그를 달래기라도 하듯 그녀는 부드럽게 다시 말했다.

“걱정 마, 달링. 달링이 눈을 뜨고 나면 분명 다른 세계에 와있을 거야. 내 달링, 달링에게 꼭 맞는 길을 내가 준비할게. 그러니까 달링은, 그 길을 걸으면서 오랫동안 살아가는 거야. 이런 더러운 길은, 달링에겐 이미 충분하니까.”

티에라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멜로는 그대로 남자들에 의해 어디론가로 이동되었다.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가 벗겨지고, 손을 구속하던 수갑이 풀리고 난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텅 빈 방 한 칸이었다.

그 이후로 멜로는 티에라를 만나지 못했다. 그는 호텔의 어느 방에 갇혀 있었다. 그의 방 주변은 매일마다 이름 모를 남자들에 의해 감시되고 있었고, 그는 룸 서비스로 오는 식사를 입에 대며 살아갔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그의 방을 감시하고 있는 남자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티에라가 그런 짓을 한 것임이 분명했지만, 티에라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를 위해 준비한 길은 무엇인지는 결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멜로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준비한, 그에게 ‘맞는 길’을 비로소 그가 보게 된 것은, 며칠 동안 감금되다시피 호텔 방에 갇혀 있다가 신문을 받게 된 날이었다. 그가 일하던 조직이 괴멸했다는 기사가 적힌 기사를 읽던 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어느 조직과의 마찰도 없고, 단순히 모두 총살 당했다고 적혀 있는 그 기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가 기사를 막 다 읽고 나자, 방의 문이 열렸다. 익숙한 여자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와 반갑기까지 했다.

“달링, 준비가 다 끝났어. 달링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을 없애고 왔어. 달링은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걸어 다닐 수 있어. 이제 달링은 자유야.”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그녀가 그를 위해 준비한 길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길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그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준비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좀 더 지난 일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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