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서 고양이를 줍는 경우는 종종 봤어도 사람을 줍는 일이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과연 얼마만큼 현실적일까.
“ 아, 일어나셨어요? ”
“ 안녕하세요. 여전히 일찍 일어나시네요. ”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한 남자, 아무로 토오루. 그는 얼마 전에 우리 집 앞에 쓰러져있던 이였다. 외간 남자를 어떻게 믿고 함부로 집으로 들으냐 묻는다면, 나 역시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급차와 경찰을 부른다고 했던 그 때, 그는 안 된다는 말만을 남기며 정신의 끈을 놓았다. 다시 일어났을 때에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이 ‘아무로 토오루’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 매일 이렇게 아침밥 차려주지 않아도 괜찮다니까요. ”
“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카렌 씨도 아침을 든든하게 드셔야 하루를 오래 버틸 수 있다고요. ”
“ 아, 네…. ”
원래는 아침을 먹지 않았던 나였건만 아무로씨와 함께 지내게 된 이후로는 어느 새 나 역시 아침을 차려먹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 아, 그렇지. 오늘은 장을 보고 올 생각인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
“ 아뇨. 그럴 필요까진…. ”
“ 집안일은 저에게 맡겨달라고 했잖아요. 신경쓰지 말고 부려주세요. ”
선한 미소를 하고 배려를 하는듯 보이지만 이건 사실 일종의 선이었다. 기실 내가 예민한 탓일 수도 있지만 그는 집이라면 몰라도 바깥에서 누군가와 있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 있지 않는 것에 상당한 경계심을 갖는 것처럼 보인달까. 처음에는 기분탓이려니 했으나 같이 지내면서 알게 된 점은 그가 타인의 시선에 꽤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 그럼, 부탁할게요. ”
“ 네. 기꺼이. ”
그는 때때로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거나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 경우가 꽤 많았다. 식사를 마치자 기분좋게 설거지를 도맡아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단순히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 라기엔 너무나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겨서 이 사람 정말 위험한 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허나 이미 이 사람은 주워버린 것을 어쩌하리.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고 만약 그대로 모른 척했다면 더더욱 마음에 남았을 것이다. 나는 잡생각을 떨치고 회사를 향했다.
* *
집에 돌아와 잠이 들자 여느 때와 같은 악몽을 꾸었다. 허나, 악몽이라고만은 볼 수 없었다. 이미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꿈에서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것에 불과했기에.
「 곧 갈게.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쌓여서 좀 급해. 미안해. 」
「 그렇게 말한 게 벌써 몇 번 째인 줄 알아? 사실 나 불안해. 당신한테 새 애인이 생긴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되어버려. 」
「 그러니까 곧 가겠다고 했잖아? 왜 나를 의심해? 내가 사랑하는 건 카렌 뿐이라는 거 알면서! 」
「 그럼 말 못할 이유가 뭔데? 이상하잖아! 난 곧 당신 아내가 될 사람이야! 그런데 모르고 있어야한다는 게 말이 돼? 」
곧 결혼할 사이였던 남자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무엇인가 바쁜 일이 있다며 늘 나와 마주치는 것을 미뤘다. 처음에는 그를 굳건히 믿던 나는 이내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 아닐까 의심하였고다. 설마, 이별통보를 한 후에 돌아온 것은 그의 알겠다는 대답이 아니라 싸늘한 주검이 된 그였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헉, 허억…! ”
식은 땀을 흘리며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다시 잠에 들지 않을 것 같아서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소파 위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 카렌씨…? ”
어느 새 아무로씨도 잠에서 깬 모양인지 그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들렸다. 생판 모르는 타인이지만 곁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안심이 될 줄이야.
“ 카렌씨,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
아무로씨는 소파 옆에 앉아서 내게 담요를 둘러주고는 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타서 건네주었다. 그제야 고개를 든 나는 그에게서 머그잔을 받아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것을 천천히 들이켰다. 그때까지 아무로씨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곁에 있어주었다.
“ 저 사진 보이시죠? ”
보고 싶지 않아서 덮어놓았던 사진이건만 아무로씨가 청소를 하며 다시 세워놓은 모양인지 한 남자와 활짝 웃으며 찍힌 내 사진이 액자에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 분명 카렌씨가 아는 선배라고 했던 분, 맞죠? ”
“ 네. 사실 그거 거짓말이에요. 저 사람, 내 남자친구였어요. 결혼을 앞둔. ”
언제 한 번 아무로씨가 그 사진에 대해 물은 적이 있지만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던 것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대답이었으나 아마 더 이상 묻지 않길 바라는 그 뉘앙스만은 그에게 잘 전달되었던 것인지 그는 그에 대해 더 묻거나 하지 않았다.
“ 그런데 한동안 연락두절이 되더니 그 이후에 돌아온 건 싸늘한 시체였죠. 참 현실감 없는 얘기죠? 들어보니 꽤 위험한 일에 몸을 담고 있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저를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나. ”
사실 그가 나를 속였다는 것이 화가 나는 것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죽어버린 게 슬픈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이리도 서글픈 것인지 딱 하나의 감정으로 서술하기란 힘들었다.
“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셨나보군요. ”
“ 결혼을 앞둔 사람이었으니 만큼 좋아하지 않았을 리가 없죠. ”
다만 그토록 바래 마지 않던 행복한 일상이 깨어져버린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 지금이어야했는가. 왜 하필 내가 만난 이가 당신이여야했는가. 의문을 제기해도 어느 누구도 명확히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이었다.
“ 나쁜 사람이네요. ”
부끄러운 것도 잊어버리고 아무로씨에게 그렇게 안겨서 한참을 펑펑 울어버렸다. 그 누구에게도 못한 이야기를 그이기에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한동안 나를 토닥여주었다.
* * *
아무로는 깨질듯한 두통이 몰려와 머리를 감쌌다. 집안 하나하나가 기폭제와 같아서 그는 언제 이렇게 종종 쓰러질 듯 고통을 호소하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기억의 단편을 되찾을 때마다 그는 자신이 여기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 아무로씨. ”
“ 아, 네. ”
“ 이거 줄게요. ”
“ 이게 뭔가요? ”
“ 아무래도 아무로씨도 휴대폰이 필요할 것 같아서... 임시로 제가 갖고 있는 공기계로 계통했어요. 옛날 기종이라 기능은 많이 없지만 그래도 스마트폰이니 불편함없이 쓸 수 있을 거예요. ”
손안에 쏙 들어올만한 사이즈의 구형 아이폰이 아무로의 손에 안착했다. 업데이트를 끝낸 모양인지 쓰는 것 자체에는 무리가 없어보였으나 폰 사이즈가 점점 커지고 있는 추이를 봐서는 작은 폰이 불편하리라 생각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아무로의 손 크기에 비해 꽤 작기도 했고. 휴대폰을 천천히 뜯어보던 그는 최근 것으로 보이는 휴대폰 고리를 발견했다. 이니셜 A와 T가 달린 다소 심플한 디자인의 휴대폰 장식이었다.
“ 이건 아무로씨의 이니셜을 따서 고른 거예요. 화려한 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아서. ”
확실히 그는 눈에 띄는 것을 꽤 꺼려했다. 휴대폰 역시 기능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휴대폰 고리는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질 것 같았으나 그녀가 일부러 그를 생각하여 달아준 것이라 하니 그는 그게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 고마워요, 카렌씨. 잘 쓸게요. ”
미소를 띄며 말한 아무로의 표정은 꽤나 화사했다. 아마 카렌이 여지껏 본 것 중에 가장 진심에 가까운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아무로의 이런 표정을 또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가면서 그의 진심 어린 얼굴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며, 그리 생각했다.
“ 아무로씨, 괜찮으세요? 아무로씨! ”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아무로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기억을 온전히 되찾게 되었다.
「 조직을 배반하고 네가 무사히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나? 」
「 한 번만 모른 척 해줘. 제발 부탁이야. 나한텐 소중한 가족이 있다고, 젠장!! 」
「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잘 가라. 」
한 번 쓰러지고 나서야 아무로는 정확하게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아무로가 애초에 이 집에 찾아온 이유, 그것은 조직원을 배반하고 나간 남자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그와 관련된 인물이 있으면 그 주변 역시 싹 정리하라는 임무를 받았기에 자신은 그것을 충실히 행하기 위해 찾아왔다. 남자는 깔끔히 제거했고 남은 건 여자 뿐이었는데, 도중에 머리를 다쳐서 기억을 잃게 되어 계획이 틀어져버렸던 것이다.
그렇다. 아무로는 카렌을 죽이러 이곳에 찾아왔다. 말단 조직원도 아니었던 남자가 조직을 배반하고 조직을 협박하기 위해 중요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도망쳤다. 아마 가장 가까운 가족, 아니면 연인에게 그것을 숨겼을 테지. 아무로는 기억을 잃은 와중에도 그것이 있을까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자신이 죽인 남자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에 있으면서 기억을 되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억을 잃긴 했어도 무해한 척하며 스파이를 연기하는 자신에게는 꽤나 감탄했을 정도.
아무튼, 아무로 토오루의 임무는 거의 끝이 났다. 증거물은 찾았고 이제는 이 여자만 제거하면 끝일터다. 조직에서는 아직 남자에게 연인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혹시 그에게 무엇인가를 받아 대신 숨겨주고 있었다면, 설령 그걸 몰랐을 지라도 그는 카렌을 제거해야 충실히 임무를 완수한 게 될 것이다.
아무로는 어딘가에 숨겨놓았던 총을 꺼내어 카렌의 머리에 겨누었다. 저를 주워준 카렌은 제 옆에서 세상 모르게 잠들어있었다. 조금 몸을 움직인다고 해서 그녀가 깨는 일은 없을 것이다. 꽤 피곤해보였으니까. 이대로 방아쇠를 당긴다면 그녀는 누구에게 죽임을 당한지도 모른 채 숨을 놓을 것이다.
「 아무로씨, 갈 데가 없으면 이 곳에 언제라도 있어도 좋아요. 아무것도 묻지 않을 테니까. 」
그런데 어째서 이리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걸까.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함께 있었기 때문에? 고작 그 이유로?
「 위험한 일이 있을 거 같으면 꼭 말해줘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꼭 도와줄게요. 」
그녀가 그리 말한 것은 제 연인의 일이 겹쳐져서 그리 말한 건지도 모른다. 저를 생각해서 해준 말은 아닐 것이다. 하물며, 저 한 마디에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바보같이 착하고 멍청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무로는 결국 그녀를 죽이지 못하고 총을 내렸다. 한동안 연락두절이 되어 검은조직이 슬슬 자신을 의심할 지도 모른다. 그 전에 여기를 떠야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아무로 토오루는 곧 모리탐정사무소에서 제자로, 그 아래의 포와로 카페에서 알바생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카렌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녀는 꽤나 그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옆동네에서 종종 이 동네로 넘어오곤 했으니 자주는 아니더라도 얼굴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로는 그녀를 멀리서만 지켜보았고 그녀가 자신을 돌아볼 새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려 반대방향으로 걸어나가곤 했다.
경찰이 ‘아무로 토오루’라는 인물에 대해서 찾지 않는 걸보면 자신이 쪽지에 [기억을 찾았으니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남긴 대로 그녀는 그대로 그의 말을 납득한 모양이었다. 사람을 너무 믿는 거 아닌가.
그녀가 자신을 기억할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혹여나 기억하고 있다면 재회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었다. 그는 카렌이 검은 조직에게 노려지지 않았고 그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안심하기로 했다. 누군가가 생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안심되다니, 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라고 생각하며, 이니셜 A, T의 휴대폰 장식 고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