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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길을 물어도 괜찮아?”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은 실로 어이가 없으면서도,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던 길을 오늘은 웬일인지 고르게 되었다. 어딘가 좋지 않은 감각이 들었지만 발은 자연스럽게 그 길로 향했다. 낯선 골목길을 죽 걸어가다 보면 시내가 보인다. 시내에서, 뭐라도 먹고 들어갈까.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마주친 사람은, 아마 그 소년의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인 만남이 되었다.

 

실로 어이가 없을 만큼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한 두 방울씩 내리던 빗방울은 이내 곧 소나기가 되었다. 소나기, 그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젖기 시작한 교복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보다 목숨이 더 중요했다. 훨씬, 더. 마츠카와는 어쩐지 밑에서 우글거리는 마음을 눌러 삼킬 수 없었다. 살고 싶어, 두려워. 생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삶의 위협에 대한 공포. 보통은,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감정이지 않나.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서 살해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주변이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학살이라도 당한 듯이, 이미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마츠카와는 말을 삼켰다. 아니, 말이 아니라 숨을 삼켰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였지? 오늘 하루 친구들이 아니라 혼자서 하교를 한 것이 문제였으려나.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지금 당장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했다.

 

“길, 이라, 니.”

“으응―. 그게 말이지. 길을 잃어서, 이 호텔에 가는 법 알아?”

 

어딘가 잔뜩 망가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츠카와는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아주, 천천히. 무척이나, 느릿하게. 그녀가 그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넌 참 친절하구나. 그 이후에 들려온 말은 현 상황에 퍽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누구보다 상냥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친절? 이 상황에 내가 하는 행동이 과연 그런 말이 어울리는 행동이었을까.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그녀는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던졌다. 바닥을 향해서 힘없이 추락한 그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녀는 뒤를 돌았다. 총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피 웅덩이에 부딪혀 소리를 삼켰다. 비가 자국을 부지런히 자국을 지워내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지워지지 않을 자국과도 같았다.

 

“고마워.”

 

그녀가 앞을 향해 걸어가다가 다시 뒤를 돌며, 그 말을 던졌다. 대체 무슨 의도?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굳이 자신에게 또 말을 건넸다. 왜? 어째서? 의문이 들기도 전에 그녀는 천천히 팔을 들었다. 쉿, 검지 손가락이 곧게 뻗어 그녀의 입술 앞에 멈췄다.

 

쉬잇.

 

무언의 협박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입을 다물어, 아무에게도 이런 얘기를 꺼내면 안 돼. 너만이 알고 있는 비밀인 거야. 그렇지? 나오지도 않은 목소리가 그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숨을 들이 삼켰다. 거칠게 쏟아져 내리는 비, 쓸려가는 피 웅덩이, 아아, 이 모든 것이 꿈이고 절망과도 같았다. 마츠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안 해요.”

“으응, 착하네.”

 

끝을 잔뜩 올려서 말을 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지 않을 테니 얼른 이 자리를 떠나줬음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었다. 제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만난다면 자신의 안위는 책임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이렇게 살아나갈 수 있는 것 또한 분명 그녀의 변덕일지도 모른다.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기울이던 그녀가 한 가지 떠올렸다는 듯이 자신의 주먹을 제 손바닥에 올렸다.

 

“이름, 알려줄 수 있어?”

 

그는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의 이름 따위를? 아, 혹여나 협박이라도 할 생각이려나. 그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오롯이 그것뿐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 침묵에 웃음을 흘렸다.

 

“응, 싫다면 별 수 없지.”

“….”

“나는 네가 꽤 맘에 들었거든.”

“그래서…?”

“또 보면 좋겠네.”

 

그녀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서는, 그대로 뒤를 돌아서 앞으로 걸어갔다. 아, 이것은 분명 마츠카와 잇세이의 인생에 남을 빌어먹게 불행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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