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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설 주의

* 수위 주의

* 모럴없는 섹드립과 근본없는 성적대상화 주의

* 작품과 작가는 별개입니다 열 번 외치고 가십시다 여러분!

 

 

 

 

그 남자에게는, ‘개’ 가 있다.

 

 

-

 

새벽의 거리는 음산하다, 어둑한 하늘은 매연으로 흐려져 별을 잡아먹고 망한 가게의 다 떨어져가는 간판은 고쳐질 일도 없이 바람에 삐걱거린다. 낡아 칠이 벗겨진 회색 콘크리트 사이로 쓰레기통을 헤집으며 돌아다니는 시궁쥐, 비워지지도 않는 쓰레기통과 녹은 타르가 구석에서 끈적거리는 시꺼먼 바닥. 더러운 도시의 지저분한 뒷골목에는 푸르스름한 안개가 고인 채 영영 빠져나갈 일이 없었다.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이 으레 그렇듯이.

 

희뿌연 연기가 스모그 낀 공기 위로 난잡하게 얽힌다. 훅, 하고 밀어내듯 뱉어진 숨결에, 하얀 아지랑이는 조각조각 흐트러지며 보이지 않는 호흡으로 스며들었다.

 

 

“씨발, 제멋대로인 새끼,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흐린 매연 속에서 살아가는 야경 속의 쥐. 도시의 건물과 다를 바 없는, 무기질적인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는 구겨진 얼굴을 하고 칫, 혀를 찼다. 손에 들었던 담배꽁초가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버려진다. 주홍색으로 빛나던 불빛이 회갈색 땅 위에서 맥없이 무채색으로 시들어갔다.

 

가녀리게 숨을 내쉬며 색을 잃어가던 불씨가 순간 빛을 더하듯이 붉게 반짝였다. 아니다, 불씨는 영영 색을 잃고 말았다. 가차 없이 재를 흐트러뜨린 새빨간 구두굽이 횃불보다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우, 담배 냄새ㅡ”

 

 

나긋하게 늘어지는 목소리, 달큰한 숨결이 섞여 느릿하게 꼬이는 발음. 비틀대는 것 같은,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은 걸음으로 다가온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안기듯이 몸을 기댔다.

 

 

“또 약을 하셨나? 아무튼 너도 난 년이야.”

“으흥, 이 바닥이 어디 제정신으로 있을 곳인가! 또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ㅡ요?”

 

 

그 부류의 여자들이 대개 그렇다지만, 유독 자극적인 인상의 여자였다. 새빨간 립스틱을 딱 과하기 직전까지만 찍어 바르고 천쪼가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면적이 적은 붉은 원피스를 입은. 그리하여 상아 조각처럼 새하얀 몸을 있는 대로 드러내고 그 위로 새까만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빨간 구두의 여자. 언제나 취해 발그스름한 볼, 초점이 흐리멍덩하게 풀린 까만 눈은 묘하게 젖은 분위기를 내곤 했다.

허나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아까울 정도의 미모다. 천박한 원피스를 입어도 사랑스러워 보일 정도로 예쁜 얼굴, 아슬아슬하게 드러난 늘씬한 맨몸. 이해가지 않을 정도로 긍지 높은 미소와 녹이면서도 녹아내리지 않는 당당한 매력적임.

‘너 같은 애가 어쩌다 이런 일을 하냐’ 하고 그가 물은 적이 있었다, 여자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오빠 같은 아저씨들이 있어서’ 하고 대답했다. 뭐, 그런 것이다. 아차하면 끝까지 내려가는 도랑이었다.

 

질 나쁜 정장 천 위로 드러낸 가슴팍이 맞닿는다, 까끌까끌해서 싫다고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남자의 팔에 껴안듯이 밀착한 여자는 대답을 보채듯 웃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있잖아, 그 폭군 새끼. 내가 그 새끼랑 다시는 거래하나 봐라, 씨발. 길 가다가 대가리나 맞아 뒤졌으면 좋겠네.”

 

 

폭군이라는 이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제멋대로에 난폭하고, 언제나 거만하게 군림하는 남자. 얼마 전에는 판테온을 쓸어버렸다던가ㅡ 그 자는 강한 만큼 성격이 더러웠다.

 

남자는 벌써 세 시간 정도 그 ‘고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인은 아주 간단했다, 예정된 거래 시간을 정확히 삼십 사 분 지나 걸려 온 전화 때문이었다. 전화의 내용도 아주 간단했다. ‘아, 세 시간 정도 늦겠군. 기다려.’ ......남자는 전화기에 총을 쏘고 싶었다.

떠올리자 다시금 짜증이 올라온 모양새로, 남자는 인상을 팍 구기며 정장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아마 이 구역의 대부분은 그 남자를 죽이고 싶어할 것이다, 그는 폭군께서 차로 달려오시다가 누군가한테 총 맞고 뒈지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담배 냄새 싫어요, 오빠~”

“미친 년, 더 독한 걸 달고 다니면서 싫기는 무슨.”

“아앙, 싫은 건 싫어ㅡ”

 

 

살짝 눈을 접으며 바스스 웃고, 팔을 꼭 끌어안은 채 목덜미에 볼을 부비는 여자는 새끼 강아지마냥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특별히 그에게만 하는 것도 아닌 헤픈 행위임을 알면서도 마음이 누그러진 남자는 슬쩍 담배를 도로 밀어 넣었다.

 

 

“머리 했냐?”

“안 꾸민 상품을 누가 사겠어요ㅡ?”

 

 

여자는 미묘하게 차분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꼬며 웃음소리를 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구불구불하지 않은 곳이 없던 머리스타일이 해파리마냥 윗부분만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취향도 특이한 여자야, 하지만 그만큼 잘 어울렸다, 예뻐서 그런가. 남자는 어깨를 살짝 으쓱이고는 여자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딱 그 즈음, 차 바퀴 소리가 들렸다.

 

 

“......이런 젠장, 오셨군.”

 

 

좁은 골목을 막듯이 선 커다란 검은 차에서 흰 전조등이 뿜어져 나오다 서서히 가라앉았다.

새까만 공기 너머로 위압적인 신형이 걸어 나온다. 장대한 키, 새까만 정장 아래로 유연하게 맞물려 움직이는 거대한 신형, 검은 가죽 장갑을 손목으로 끌어당기며 느긋한 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건장한 남자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기이한 안광을 띤 녹금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숨 막히게 번뜩인다, 이리저리 뻗친 청회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남자가 여유를 띠고 오금이 저릴 정도로 오싹하게 미소 지었다,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유독 흉흉했다.

 

 

“......오셨습니까. 매그너스 님.”

“아ㅡ 여태껏 여기서 기다렸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없긴 씨발. 남자는 저 제멋대로인 폭군 매그너스가, 삼십 분은 걸릴 것 같대놓고 십 분 만에 와서 허겁지겁 달려온 상대를 제자리에서 쏴 죽인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유는 자기보다 늦게 와서였다. 알싸하게 미친 새끼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닙니다, 매그너스 님을 기다리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됐다, 뻣뻣하게 굴 거면 물건이나 볼까.”

“...네.”

 

남자는ㅡ속은 어쨌든 겉만은ㅡ한없이 정중한 태도로 잠시 옆에 놓아두었던 가방을 건네고는 흘끔 옆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지 목숨 간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여자, 한참 주위를 둘러보아도 회색 콘크리트 벽 사이 유달리 눈에 띄던 새빨간 옷자락이 흔적도 없었다.

 

 

“...뭘 그렇게 찾지?”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가 음산하게 공기를 울렸다. 짐승의 목울림과 비슷한 그르렁거림, 날것의 숨소리가 지척에서 남자를 압박했다. 뻣뻣하게 구는 게 지루한 양 행동해 놓고 사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로 대가리에 이빨을 들이대는 폭군이 상대라는 것을 잠깐 잊고 있었다.

속으로 쌍시옷 소리를 뱉어도 골백번을 내뱉은 남자는 어색하게 숨을 들이키며 급하게 상황에 걸맞는 대홧거리를 찾아 훅 던졌다.

 

 

“아, 개를... 데리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떠오른 맥락은 아주 명확했다. 개새끼야. 하지만 그 불신한 뿌리와는 달리 주제 자체는 꽤 괜찮은 것이었는지, 매그너스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이내 느긋한 미소를 띄웠다. 꽤 즐거운 것 같은, 흥미있는 듯한 미소를.

 

 

“아아, 있지. 까맣고... 음, 작은 녀석이야.”

 

 

작은 녀석. 당연히 대형견을 생각하고 있던 남자는 시선을 약간 굴렸다. 저 폭군과 작은 개라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만, 그렇게 따지자면 그가 애견인이라는 부분부터가 인지부조화적이었다.

 

폭군, 매그너스는 개를 꽤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전해들은 그의 어록으로 미루어 봤을 때... 아마도. 왜 확신할 수 없냐면, 남자에게 들어온 정보가 믿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ㅡ 아예 그 개를 보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했다시피 그는 죽이는 것을 정말 잘 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가벼운 일로 목숨이 휙휙 날아갔다, 그러니까, ‘개’를 보여줬으니 죽이겠다, 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매그너스의 휘하에서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상식이 되는 것이다. 그 개를 보고 살아남은 것은 그의 직속 부하 딱 세 명 정도였다. 그리고 그 셋은 당연히 바깥에 정보를 흘릴 이도 아니었고. 전해들을 수 있는 것은, ‘매그너스는 개를 데리고 다닌다’ 내지는 ‘매그너스는 개를 예뻐한다’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 예뻐한다의 기준은... 매그너스의 것이라는 소리였다. 데리고 다니면서도 남에게 노출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안 보여주며 일단 떨떠름한 얼굴로 예뻐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복지라는 것이 대체 얼마나 대단할지. 남자는 조금 기묘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다, 이어지는 말에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그 쪽으로 먼저 보냈는데... 못 만났나?”

“......예?”

 

 

언뜻 너그러운 양 미소를 짓는다. 허나 육식동물이 웃음을 띄워봤자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날 뿐이다. 커다란 송곳니를 눈앞에 두고서, 남자는 또각, 하는 구두 소리를 들었다.

 

 

“개는 냄새를 잘 맡거든.”

 

 

‘오빠 같은 아저씨들이 있어서.’ 그 말이 왜 떠올랐는지, 모른다고 부정할 수도 없이 남자는 알고 있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 뒤로 짤랑이는 붉은색이 언뜻 스쳤다.

 

 

“아ㅡ 그리고 알다시피,”

 

 

어쩌면 그 여자는 도랑에 떨어진 것이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그 도랑이 본인에게는 아차해도 살짝 비틀대며 빠져나올 뿐인 얕은 개울이었을 수도 있지.

 

 

“나는 뒷말이 나오는 걸 정말 싫어해, 응?”

 

 

긍지 높은 당당함, 누군가를 닮았을 정도로 높이 존재하는 시선.

 

 

“거기 있잖아.”

 

 

그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르네.”

 

 

동시에, 남자의 머리에 차가운 금속 덩어리가 닿았다. 철컥, 인조적인 쇠울림.

 

 

“멍멍.”

 

 

지극히 또렷한 목소리로.

 

 

“물어.”

 

 

빨간 구두, 빨간 원피스, 빨간 립스틱,

 

 

빨간색.

 

 

 

-

 

 

 

“우리 집 개는 쥐새끼를 참 잘 잡는단 말이야.”

 

 

매그너스는 만족스레 웃으며 훤히 드러난 목덜미를 감싸듯이 쓰다듬었다. 그가 지정한 차림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매력적인 결과물이었다. 새하얗고 우아한 목덜미, 얇게 도드라진 뼈마디와 늘씬한 허리 위로 걸쳐진 새빨간 천이 가느다란 몸의 라인을 전혀 가리지 않은 채로 늘어져 내린다. 높은 굽의 빨간 구두 위에 올라간 가냘픈 발목에 새하얀 피부 위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붉은 립스틱...

사실 그렇단 말이지, 그 몸은 가릴수록 군침이 돌았고 드러낼수록 목이 말랐다. 매그너스 그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아예 입지 않는 쪽이 훨씬 좋았지만.

아무튼 저 사랑스러운 미모에 안 어울리는 것이 있을 리도 없었다. 등허리도 배도 전부 드러난 파격적인 디자인에 질릴 정도로 레드인 드레스코드임에도 딱 좋게 자극적이다. 매력적인 건 좋지만 과한 것 아닌가, 좀 천박해 보이라고 입혔는데 너무 고아하게 어울려서, 입으라고 명령한 매그너스 본인의 입장이 살짝 곤란할 정도였다. 다음부터는 위장을 그만 시켜야 하나?

 

느릿하게 목덜미에 두었던 손을 볼로 쓸어 올리는 움직임에 르네는 순종적으로 눈을 내리깔며 볼을 부볐다. 헤프게 던지는 아양도 버릇처럼 지어내는 웃음도 아닌,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 나긋한 굴종. 그것이 제 것이라는 사실이, 매그너스는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이번에는 뭐로 할까, 가방을 바로 안 건네고 땅 위에 뒀어서?”

“으흐흥, 그러면 사람들이 더 딱딱하게 굴 건데.”

“말랑해빠진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얄팍하게 겨우 가려진 가슴께의 천을 슬쩍 들춰내는 시늉을 하자 까르르 웃으며 몸을 뒤로 뺀다. 입기 싫다고 잉잉 투정하던 사람이 누구였나 싶을 정도로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르네는 노출이 심한 옷을 대단히 꺼려했지만 일단 입혀 놓으면 잘만 입고 다니는 여자였다. 아무튼 적응력도 빠르고 제 목숨줄 하나는 잘 챙기고... 다르게 말하면 좀 비겁한 성격이었으나, 매그너스는 그 부분이 퍽 마음에 들었다. 일단 살아 있어야 뭘 시키든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런 주제에 충성심은 지독하게 깊어서, 매그너스를 배신할 여자도 아니었다.

 

 

“쥐 잘 잡는 우리 강아지.”

 

 

언뜻 다정하게 속삭이며 머리를 쓰다듬는 매그너스의 손길에, 파르르 떨리는 젖은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르네는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랬다. 그녀는 그를 깊이도 사랑했다. 그 사랑도 제 것이었다, 매그너스는 정말로,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르네는 용도 잘 잡는데.”

“며칠 실컷 놀았을 거 아냐.”

“용 잡구 싶어요, 냠냠.”

 

 

르네는 매그너스가 필요하다.

그녀는 그를 늘, 선명하고 확실한 형태로 요구해왔다. 절대 부정하지 못할 갈구의 의태. 야살스럽게 눈웃음치며 허리에 손을 감아오는 르네를, 매그너스는 굳이 뿌리치지 않은 채 마주 끌어안았다.

 

 

붉은 구두 위로 질척하게, 붉은색, 붉은색이 덧그려진다. 사냥개를 동여맨 목줄의 색은 아주 선명한 빨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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